Written in interview by Park Sang-gyu. Korean only, (2015 Daum crowdfunding series).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과 한국어에 서툰 뉴질랜드 남자 사이에 생선구이 접시가 놓였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조기, 갈치, 삼치 냄새를 맡으며 두 남자는 어색하게 웃을 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뉴질랜드에서도 어색하면 종종 술을 마실까?

“이모, 막걸리 한 병! 나 술 마실래요!”

로저 셰퍼드(49)는 젓가락으로 흰 생선살을 바르며 외쳤다. 어색한 한국어 발음과 억양 탓에 식당 안 손님들의 눈길이 쏠렸다. 다시 찾아온 어색한 순간. 막걸리 한 잔 들이키고 용기를 냈다. 영어와 한국어를 조합해 드디어 내가 입을 뗐다.

“구례 students(학생들)에게 English(영어) 가르치면 good(좋겠네요).”

“No.”

단호했다. 로저는 영어로 돈 벌기 위해 구례에 정착한 게 아니라고 했다.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한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 그는 지리산 때문에 구례군민이 됐다.

어른 넷 살린 북한의 두 아이, 놀라웠다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인 지리산은 로저에게 운명같은 산이다. 뉴질랜드에서 경찰로 일하던 2006년 초여름, 3개월 휴가를 받아 한국을 처음 찾았다. 경남의 한 시골 버스터미널에서 한반도 지도를 봤다. 길고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어설픈 한국말로 버스기사에게 물었다.

“이 지도 또 있어요? 나 이거 갖고 싶어요! 어디서 사요?”

버스기사 아저씨는 지도를 떼서 로저에게 줬다. 이 지도가 그의 삶의 지도를 바꿨다.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부터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한국인이 그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네 글자로 답했다.

백두대간!

사흘 동안 걸은 뒤 지리산 바래봉에서 하산했다. 장비와 식량을 챙겨 다시 산으로 향하려 했다. 장마가 시작돼 그의 발은 묶였다. 지루한 장마에 따른 많은 기다림. 역설적이게도 발길을 잡은 장마가 큰 결심을 하게 했다.

“Keep going! (계속 가자!)”

이 남자, 이러다 정말 북한까지 갔다. 뉴질랜드로 돌아가 사표를 내고 경찰 일을 그만뒀다. 2007년 9월 2일 지리산 천왕봉부터 다시 걷기 시작해 남한의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친구 앤드류(Andrew Douch)와 함께 영문 가이드북 ‘BAEKDU DAEGAN TRAIL’을 펴냈다.

휴전선에서 멈출 수 없었다. 북한 정부에 백두대간을 탐험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북한에서 응답이 왔다. 2011년, 로저는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우리는 식당에서 일어났다.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과 식당에서 인터뷰하는 건 얼마나 어색한 일인가. 좋은 이야기는 현장에서 나오는 법.

“로저, 지리산이나 한 번 갑시다. 우리 산에서 이야기해요.”

“Ok, 가자 지리산! 지금 날짜 잡아요.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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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부터 2박3일 동안 지리산을 종주했다.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그의 집에서도 몇 번 이야기를 나눴다. 지리산온천에도 함께 갔다. 세상에나, 이 남자 좀 심하다. 신체 은밀한 부위에 한반도 지도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온천에서 마주친 여러 남자들의 시선이 자꾸 그 부위로 쏠렸다.

‘오마이뉴스’에서 퇴사한 나는 지리산 피아골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 구례에서 통역할 사람도 구했다. 그에게 진짜 궁금한 걸 물었다.

“당신네 나라에서 ‘반지의 제왕’을 촬영했잖아요. 밀포드 트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래킹 코스고. 뉴질랜드 숲이 백두대간보다 더 울창하고 좋지 않아요?”

“내가 백두대간에 반한 건 풍경 때문만이 아니에요. 산과 지역에 얽힌 한국의 역사와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풍수지리, 토템신앙, 많은 사찰과 문화재.”

로저가 컴퓨터 속 북한 쪽 산 사진을 보여줬다. 한반도 지도도 펼쳤다.

“자, 어느 산부터 이야기할까?”

여러 사진을 보다가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를 짚었다. 북한의 두 아이가 옅은 운무가 깔린 능선을 배경으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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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 이 아이들이 어른 네 명을 살렸어요!”

로저는 흥분한 채 2012년 6월에 찾은 두류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은 해발 2309m에 이른다. 로저가 차를 이용하지 않고 두 발로 오른 가장 높은 백두대간의 산이다.

로저는 차를 빌려 북한 사람 세 명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운전기사 한명수,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에서 일하는 황철영, 황성철이 그들이다. 평양에서 백암군까지 가는 데에만 무려 이틀이 걸렸다. 북한 지리를 잘 아는 ‘베스트 드라이버’ 한명수가 운전을 했는데도 말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평양-원산-함흥-북청을 거쳐 가야만 했다.

힘들게 찾은 양강도 백암군을 찾았으나 가이드를 맡기로 한 북한 측 공무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탓에 두류산 근처에 도착해서도 종일 산 출입구를 찾아 헤매야했다. 북한의 많은 산은 남한처럼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다. 원형 그대로 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식당, 기념품 가게, 대피소 등은 하나도 없어요.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데, 뉴질랜드 산처럼 원시림같은 느낌이 들어요. 무척 크고 울창한 산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요정이 나올 것 같았어요. 습한 곳에는 이끼가 무성한데,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그 숲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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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정을 만나기 전에 로저의 차는 비포장 진흙탕 길에 빠지고 말았다. 요정 대신 북한 농민이 끄는 트랙터가 나타나 로저 팀의 차량을 빼냈다. 산으로 드는 입구를 찾지 못한 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다음날 오전 상황도 비슷했다. 피곤과 짜증이 밀려올 무렵, 박금철을 우연히 만났다. 박금철은 남한으로 치면 산림청 직원으로, 두류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박금철이 로저 일행에게 먼저 물었다.

“당신들 길에서 뭐합니까?”

“두류산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어요.”

“두류산은 내 안방이나 다름 없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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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는 “거의 납치하다시피 박금철을 차에 태워” 함께 두류산으로 향했다. 뒤늦게 양강도 공무원 방령이 합류했다. 박금철은 놀라운 산 사람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산을 타면서 로저 일행을 안내했다. 많은 산을 경험한 로저가 지쳤을 때도 박금철은 멀쩡하게 저 앞에서 걸었다.

황철영과 방령은 뒤처졌다. 로저 가방에는 카메라 장비만 들었다. 음식과 물은 황철영 가방에 있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땐 박금철과 로저 모두 지쳤다. 무엇보다 물이 필요했다. 1시간 뒤에야 황철영, 방령이 올라왔다.

“물 좀 줘!”

황철영은 머뭇거렸다. 마음이 급한 로저가 다가가 가방을 뒤졌다. 물병이 6개나 있었다. 급히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들이켰다. 

이런..소주였다! 순간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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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물을 많이 챙기라고 말했는데, 6병 모두 소주였어요! 그 높은 산에 오르는데 물 대신 소주만 챙기다니! 화가 나 따지고 싶었지만 황철영도 무척 지쳐 보여 애써 웃고 말았어요.”

황당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2309m 고지에 오르면서 물 대신 술을 챙긴 북한 인민의 대범함(?)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무려 6~7시간 걸어 올라온 정상. 어디를 둘러봐도 2000m가 넘는 푸른 봉우리뿐이다.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물을 오래 마시지 못해 두통까지 생겼다. 로저가 허탈하게 황철영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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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강도 두류산 정상. 왼쪽부터 로저 셰퍼드, 박금철, 황철영, 방령 ⓒ로저 셰퍼드

“우린 한 배를 탔어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뭐 별 수 있어? 근데, 죽기 전에 좀 알고나 죽읍시다. 어떻게 술만 챙길 생각을 했어요?”

지친 황철영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불평한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다. 로저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하산을 준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능선 위에서 북한 아이 둘을 만났다.

산에서 백인을 만난 아이들은 놀랐다. 아이들은 산 건너편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이었다. 로저 일행은 큰 기대없이 물었다.

“너희들 물 좀 있니?”

“물이요? 저 쪽에 샘터가 있는데요.”

아이들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로저 일행은 그곳으로 급히 이동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맑은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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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철도 모르는 샘터를 아이들이 알고 있더군요. 아이들 눈에는 술만 챙겨 산에 오른 우리가 참 바보로 보였을 겁니다. 걔네들이 우리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어요.”

간신히 목을 축이고 내려오니 날이 저물었다. 완전히 해가 지기 전에 곰 배설물을 발견했다. 박금철은 과거에도 몇 번 곰을 봤다고 했다. 그만큼 두류산은 훌륭한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남한 사람은 거의 모든 북한의 산은 황폐화된 걸로 알아요. 물론 벌목 등으로 민둥산이 된 곳도 많지만 백두대간 산줄기는 잘 보존돼 있어요. 상업화가 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두류산은 정말 놀라운 산입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에요. 두류산에서 만난 사람은 두 아이가 전부였어요. 깨끗하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오직 등산을 위해 온 사람은 우리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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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박금철과 두 아이가 아니었으면 두류산 등반은 불가능했거나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박금철은 우연히 만났음에도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가이드를 자청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로저는 박금철에게 캠핑용 등을 줬다. 북한의 전력 상황은 좋지 않고,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양강도 상황은 더욱 나쁘다. 박금철은 등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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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군에는 외지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 등 숙박업소가 없다. 외형으로만 보면 1960년대 남한의 지방 소도시 풍경과 비슷하다. 남으로 치면 읍내 근처에 채석장이 있다. 

방령의 도움으로 로저는 그 공사장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다. 양강도의 밤은 지독히 캄캄했다. 대신 별은 눈부시게 잘 보였다.

방령은 아내가 직접 만든 된장을 로저에게 줬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된장이었다. 백두대간의 남쪽 끝,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사는 로저는 요즘도 그 된장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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