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다닌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내고 시작한 ‘백수 기자’의 삶. 첫 일정으로 로저 셰퍼드(49)의 집을 방문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남 구례군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내게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했다고 말한 로저. 신빙성은 높았지만 검증이 필요했다.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을 더 보여달라며 그의 집을 찾았다. 지난 1월 4일의 일이다. 로저가 컴퓨터를 켜고 사진 파일이 담긴 폴더 하나를 열었다. 검증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거 뭐야!?”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물 흐름이 빨라 보이는 강 위에 사람이 서 있는 사진. 강을 이용해 나무를 나르는 떼몰이꾼이었다! 산업화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떼몰이꾼이 아직 한반도에 존재하다니. 놀라웠다.

나는 마우스를 잡고 사진을 확대했다. 물살은 거칠어 보였다. 북한의 떼몰이꾼은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뗏목 위에 서 있었다. 사진을 더 확대해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팔짱까지 낀 북한 떼몰이꾼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건 어려운 일도 아니구만!”

내 반응을 본 로저는 소리내 웃었다. 그에게도 사연이 많은, 하마터면 놓칠 뻔한 순간이었다. 로저가 눈을 반짝이며 ‘노상방뇨’ 중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했다.

2012년 6월, 태흘봉을 가기 위해 북한 양강도 운흥군의 시골길을 달릴 때였다. 개마고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오랫동안 소변을 못 본 로저의 아랫배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하필이면 이날 따라 ‘베스트 드라이버’ 한명수의 말이 더 많았다.

“이봐, 로저. 창밖의 황소들을 잘 보라고. 뭔가 좀 다르지 않아?”

로저의 눈에는 다 똑같은 한우로 보였다. 소변이 급한 탓에 소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로저의 사정을 모르는 한명수는 차 세울 생각을 않고 말을 길게 이었다.

“대충 보지 말고, 자세히 보라고! 여기 개마고원 소들은 다른 지역의 소에 비해 다리가 짧아. 개마고원은 겨울이 길고 무척 춥거든. 이런 환경에 적응하며 살다 보니 소의 다리가 짧아졌다니까. 저것도 일종의 진화인 셈이지.”

한명수가 무슨 말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소변이 너무 급한 로저는 한명수의 말을 끊고 차를 세웠다. 소변을 보며서 소의 다리를 살펴보라는 의도였을까? 한명수는 하필 소가 풀을 뜯고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로저는 차에서 급히 내려 노상방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앞에 있는 소의 다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그의 눈엔 남한의 한우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 처지에서는 백인 로저의 모습이 북한 주민과 확실히 달라보였나 보다.

풀을 뜯던 소가

천천히 로저에게 걸어왔다

소변을 다 보지 못한 로저는 그 상태로 뒷걸음질을 쳤다. 소는 멈추지 않았다. 로저는 소변을 끊지 못한 채 계속 뒤로 걸었다. 난감했다. 차 안에서 한명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와중에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강 상류 쪽에서 뗏목과 떼몰이꾼이 나타난 것이다. 로저도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로저는 대충 소변을 수습하고 차로 달려갔다.

“명수! 한명수! 카메라! 내 카메라 달라고!”

차에서 카메라를 찾아 든 로저는 강가로 다시 달려와 급하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로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줌 누면서 뒷걸음치다가 발견한 명장면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찍지 못했을 거라고. 물살이 엄청 빨라 뗏목이 금방 지나갔거든.”

떼몰이꾼을 찍은 로저는 흥분한 채 차로 돌아갔다. 운전기사 한명수,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에서 일하는 황승철, 황철영은 그런 로저를 신기하게 여겼다. 로저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저 뗏목 탈 수 있을까? 뗏목에 올라 떼몰이꾼들의 삶을 취재하고 싶어! 뗏목 위에서 사진도 찍고 말이야. 저런 모습은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고. 당신들 알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도 아주 좋아할 풍경이라니까”

잔뜩 흥분한 로저와 달리 북한 주민인 세 남자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황승철은 “위험한 일이니, 혹시라도 뗏목에 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심드렁하게 로저에게 말했다.

진귀한 장면을 포착한 로저의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태흘봉 산행에서도 좋은 일이 생길 듯했다. 시작은 로저의 생각대로 진행됐다. 일단, 안내를 맡은 리관범이 ‘나이스 가이’였다. 로저는 태흘봉의 풍광보다 리관범이 더 기억에 남았다.

“산에 오를 때 카메라 장비 때문에 내가 땀을 많이 흘렸거든. 잠시 쉴 때 리관범이 자기 수건으로 직접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더라고. 솔직히 처음엔 놀랐지. 서양에서는 남의 몸을 그렇게 건드리는 문화가 없거든. 그래서 나도 좀 어색했는데, 그의 태도가 너무 친절하더라고.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행동이었어.”

태흘봉은 경관이 빼어난 산은 아니다. 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 정상에 서면 저 멀리 장엄한 백두산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로저가 올랐을 때는 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대신 리관범이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백두산 등 주변 산 위치를 알려줬다.

로저 일행은 태흘봉 정상에서 소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리관범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근 주민들도 태흘봉에 올라 백두산을 보곤 한다”고 말했다. 소주를 한 잔 걸친 로저에겐 리관범의 말이 애잔하게 들렸다.

“백두산은 태흘봉에서 약 70km정도 떨어져 있거든. 멀지 않지만, 이 마을에는 대중교통이 없고 ‘관광’이란 게 발달하지 않아 정작 주민들은 백두산에 못 가는 거지. 남한 사람들은 중국을 통해서만 백두산에 갈 수 있고, 가까이 사는 북한 주민들은 교통편이 없어 못 가고..슬프지 않아?”

로저 일행은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산에서 내려왔다. 운흥군을 떠나 해산시로 가야했다. 로저가 묵는 호텔이 그곳에 있다. 멀지 않았지만 문제는 도로 사정이었다. 비포장길을 오래 달려야 했는데, 결국 타이어가 펑크났다. 

날은 어두워졌고, 구름도 많이 끼었다. 돌발상황 탓에 깊은 오지에서 캠핑을 해야 했다. 헤드랜턴을 착용한 채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때부터 개마고원의 ‘공포’가 시작됐다.

랜턴 불빛 주위로 아주 작은 벌레가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가이드로 일했던 로저도 처음 본 벌레였다. 벌레는 피부에 붙어서 피를 빨아댔고, 일부는 옷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날 밤, 한명수가 특히 벌레에 많이 물렸다. 그는 다음날 운전을 하는 내내 온몸을 벅벅 긁으며 괴로워했다. 운전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 한명수의 신경은 무척 날카로워졌다.

그는 북한 구석구석까지 다녀 길을 잘 안다. 그가 없으면 백두대간을 탐험하는 로저 일행은 움직일 수가 없다. 하루에 어느 정도 이동해, 어디에서 잠을 잘지 결정하는 것도 그였다.

이렇게 중요한 한명수는 약 일주일 동안이나 가려움증을 앓았다. 이 기간 동안 로저는 한명수의 눈치를 보며 그가 원하는 곳에서 자고, 그가 원하는 걸 먹으며 지냈다. 태흘봉을 다녀온 이후, 로저는 소만 보면 다리 길이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Written in interview by Park Sang-gyu. Korean only, (2015 Daum crowdfunding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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